한국사회가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갈등으로 극한 대립과 분열의 길로 치닫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사회적 이슈마다 상이한 목소리를 내는 등 극단적 대립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이념갈등이 아닌 일반적인 사회갈등이 이념갈등으로 비화되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22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결과는 전체 300석(지역구 254석, 비례 46석) 중에서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연합’ 175석, ‘국민의힘+국민의 미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진보당’ 1석, ‘새로운미래’ 1석을 차지하는 등 야권의 압승, 여당의 참패였다. 국민들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다수 의석이 필요하다는 여당에게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정권심판을 호소한 야권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낸 것이다.
반면, 지역별 총선 결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충청, 호남 및 제주 등 서쪽 지역은 대부분 야권이 압승했지만, 강원, 대구경북 및 부울경 등 동쪽 지역은 여당이 의석을 거의 독차지한 것이다. 이러한 의석 분포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지역주의에 기반한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대립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간 또는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대립이 한국 사회에 ‘탈진실(post-truth)’ 현상을 부추김으로써 사회갈등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 또는 나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가진 정치적 신념이나 이해관계 및 감정을 기준으로 사실을 편파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이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주장은 배척하거나 거짓으로 몰아붙이면서 악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단적 대립 현상은 어떠한 요인에 기인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자본과 권력의 비대화에 따른 ‘공론장(公論場)’의 침체현상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되고 있다. 시민들이 공적 현안에 대해 직접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공론 형성의 장(場)인 공론장이 약화되면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론장은 사회구성원들이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 토론을 통해 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이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이끌어 내거나, 시민들 개개인이 능동적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은 공론장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공론장은 참여자들의 다양하고 평등한 행동과 발언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열린공간’인데, 여러 이유로 인하여 ‘닫힌공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사회적 이슈가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토론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일지라도 열린마음으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열린사회(open society)’를 지향한다면, 한국 사회는 갈등을 넘어 통합의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공론장에서의 토론은 상대방의 완전한 패배나 굴복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공론장은 사회통합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정보를 검증하고 시민의 합리적 의견을 모아 공론장으로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22대 총선이 민심을 담은 결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보수적 시각을 가진 시민이든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이든 공론장에 함께 모여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열린마음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