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 교수(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지역사회 갈등관리에서 갈등조정협의체와 각종 주민참여위원회 및 공론협의체 등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조직들은 행정과 주민 사이의 소통 구조를 형성하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메커니즘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운영 현장은 이러한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고, 형식적 회의 진행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의는 열리지만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참여는 있지만 변화는 없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표성의 실질적 결여’이다. 현재의 협의체 구조는 이해관계와 직접 연결된 당사자가 참여하기보다, 지역사회 네트워크나 명예 중심의 ‘감투성 대표’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 해결 의지가 있는 사람, 결과에 책임질 사람이 아니라, 참석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대표로 참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대표성이 무너질 때, 공론 구조는 현실 문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갈등은 오히려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회의는 ‘숙의와 해결의 장’이 아니라 ‘행사와 소통의 형식적 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논의는 반복되지만 결론은 미뤄지고, 책임은 분산되고, 주민의 체감 변화는 사라진다. 이는 협의체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주민들은 “이미 정해진 결론을 들려주는 과정일 뿐”이라는 냉소를 갖게 된다. 갈등관리의 목적이 사라지고 참여의 본질이 흐려진다. 따라서 지역사회 갈등관리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표 구성 방식의 구조적 전환’이다. 대표를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역할을 수행할 사람을 세우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개선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대표 구성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분석을 기반으로 한 대표 구성으로 나아가야 하며, 무작위 추출 방식의 시민참여단 도입을 통해 대표성 편중을 완화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소수집단, 취약 집단 및 직접 피해자 등에 대한 참여 통로를 보장해야 하며, 이해충돌 검증 절차를 도입하여 대표의 자격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둘째, 대표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의 참석이 아니라 결과와 해결 중심 활동 수행을 기본 원칙으로 설정해야 하고, 대표의 활동을 공개하고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갈등 조정 역량 강화 교육과 훈련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셋째, 협의체 운영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의록 공개 및 정보공개 시스템을 정례화해야 하며, 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명확한 기록과 피드백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대표는 명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람이어야 하며, 참여는 자리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특히 감투형 대표에서 역할형 대표로 전환될 때, 지역사회는 형식적 갈등이 아니라 실질적 해결로 나아가게 된다. 진정한 대표성이 살아날 때, 상생과 소통의 구조는 비로소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 협의체는 더 많은 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나은 결정을 만들어야 하는 조직이다. 실질적 대표성의 재구성을 통해 지역사회는 대립을 넘어 협력으로, 갈등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